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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韓流)는 문화의 영역을 벗어나 K-pop, K-드라마, K-푸드에 이어 ‘K-EDU’가 새로운 한국 브랜드로 부상하고 있다. 2025년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외국인 유학생 수는 25만 3434명으로, 전년 대비 21.3% 증가했다. 관심의 방향도 달라졌다. 기존의 유학 수요가 아시아권에 집중돼 있었다면, 최근에는 미국과 유럽의 교육정책 관계자 및 연구자들이 한국의 직업교육훈련(TVET, Technical and Vocational Education and Training) 시스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배경에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미국은 대학 학자금 부채가 약 1조7000억 달러 규모로 증가하면서 전통적인 4년제 학위 과정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유럽은 독일의 ‘아우스빌둥(Ausbildung)’ 방식의 도제 교육이 오랜 강점으로 꼽혀왔지만, AI와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기술·산업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새로운 직업교육 모델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맥락에서 ‘한국형 직업교육(K-TVET)’ 모델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은 2000년 UNESCO 직업기술교육훈련 우수센터로 선정된 이후 2012년부터 동아시아·동남아시아 UNESCO-UNEVOC 클러스터 코디네이팅 센터로 활동하고 있다. 2024년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공동선언에서도 양측이 TVET 학교 설립과 직업훈련 경험 공유에 공동 협력하기로 하는 등 K-TVET의 위상은 이미 국제무대에서 검증되고 있다. 또한 K-TVET은 산업화 과정에서 형성된 산학협력 구조와 빠른 기술 적응력을 바탕으로 ‘실습중심 교육 모델’로 평가받는다.
교육부가 발표한 ‘유학생 교육경쟁력 제고 방안’(Study Korea 300K Project)이 단순한 숫자 목표가 아닌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교육 수출’이다. 유학생을 유치하는 것에서 나아가, 한국의 교육 시스템 자체를 해외에 이식하는 구조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경북대가 베트남 FPT대학교와 협약을 맺고 하노이에 ‘KNU Vietnam’을 설립하기로 한 사례는 이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국립대학이 해외 대학과 협력해 현지에서 본교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학위를 수여하는 첫 사례로, 한국 고등교육 시스템의 해외 이전이 본격화되는 신호탄이다.
■ ‘교육이 곧 취업’ 산학연 연계로 현장중심형 전문 인재 양성 = 한국의 고등직업교육은 크게 일반대와 전문대라는 두 축으로 구성돼 있다. 일반대는 학술·연구 중심, 전문대는 직업교육을 핵심으로 설계돼 학제 차이가 있었지만, 최근 학령인구 감소, 수도권 집중 현상, 지역소멸 위기 등의 영향으로 지역 정주 인력 양성의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일반대와 전문대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산업현장과의 연계를 핵심으로 재편되는 추세다.
일반대의 직업교육 트랙은 심화 이론과 산학협력 R&D를 결합하는 방향으로 특화되고 있다. 특히 정부 부처가 직접 설립한 특수목적 대학들은 해당 부처의 산업·노동 정책과 교육과정이 긴밀하게 연동돼 높은 실효성을 발휘한다.
한국기술교육대학교(이하 한기대)는 고용노동부가 1991년 설립한 국내 유일의 직업능력개발 특화 대학으로, 설립 당시부터 졸업생이 어떤 일자리를,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잘 수행할 수 있느냐를 목적에 두고 교육을 진행해왔다. 핵심 프로그램은 ‘IPP(Industry Professional Practice)’다. 이 프로그램은 기업의 실제 프로젝트에 참여해 현장에서 활용가능한 실무역량을 기르는 장기현장실습 모델로, 단순 인턴십이 아닌 기업의 실제 프로젝트 팀에 구성원으로 참여해 현장에서 바로 활용가능한 전문 인재를 양성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재직자·구직자를 위한 온라인 플랫폼 ‘STEP(Skill To Employment Platform)’도 주목할 만하다. STEP은 1000여 개 이상의 직업훈련 과정을 탑재하고, 고용노동부 정책과 연동해 국비 지원까지 연계된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으로, 대학이 평생학습 인프라로 기능하는 구조다.
산업통상자원부가 1997년 설립한 한국공학대학교는 ‘기업과의 공동 기술 문제 해결’에 방점을 찍었다. 한기대가 ‘사람의 취업 역량’에 집중한다면, 한국공학대는 ‘기업과 함께 기술을 만드는 것’이 교육의 목표다.
한국공학대는 ‘Engineering House’(EH) 기반 실험 중심 수업이 주목 받고 있다. EH는 기업과 진행하는 실전 프로젝트를 정규교과로 구현한 R&D 기반 산학협력교육센터로, 기업은 교수와 공동연구를 할 수 있고, 학생은 기업연구원으로부터 관련 실무를 배우며, 교수는 현장에서 실용기술을 연구하고 인재를 양성할 수 있어 산학 연계 실무교육의 대표 모델 중 하나로 평가 받는다. 기업 부설 연구소와 기술센터가 교내에 직접 입주하기 때문에 학생은 재학 중 기업 연구소의 프로젝트 인력으로 참여할 수 있고, 기업은 필요한 인재를 조기에 발굴·육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교과서 속 이론과 현장의 기술적 난제가 같은 공간에서 해결되는 것이다. 한국공학대는 가족회사 제도도 도입해 4557개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100개 이상의 기업 연구소와 EH를 활발히 운영 중이다.
■ “학위보다 역량” 산업과 대학의 간극 좁히는 교육 프로그램 운영 = 사립대 중에서도 AI 시대 인재 양성의 구체적이고 이식가능한 모델을 선보이는 곳이 많다. 그 중 하나가 한양대다.
한양대는 이공계 전 학과에 AI·데이터 기초 역량 과목을 필수화하는 방향으로 교육과정을 개편하면서 전공 간 경계를 허무는 융합전공 트랙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마이크로디그리(Micro-Degree)’가 핵심이다. 특정 AI 기술 분야를 단기 집중 학습하면 대학이 공식 인증하는 제도로, 기업 채용에서 공식 역량 지표로 활용되도록 산업계와의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HY-AI 교육 체계’는 기초 리터러시부터 전공 연계 심화까지 단계적으로 설계돼 있다. MIT, 카네기멜런 등 해외 대학과 운영하는 복수학위 및 공동 캡스톤 프로젝트는 글로벌 연구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통로로 기능한다.
로봇이 일상과 산업현장을 빠르게 파고드는 시대에 국내 최초로 로봇학부를 개설한 광운대학교도 주목받는다. 광운대는 단순한 기계 조립을 넘어 AI과 제어공학,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융합 커리큘럼으로 산업계가 원하는 실전형 로봇 전문가를 키워내고 있다.
광운대 로봇학부의 교육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키워드는 ‘Quad(쿼드) 시스템’이다. 영어, 수학, 전공이론, 실습 네 가지 축을 동시에 강조하는 방식으로,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고루 역량을 키우는 것이 핵심이다. 전기, 전자, 컴퓨터, 통신, 소프트웨어, 기계공학이 결합된 융합 구조 덕분에 각 학문의 핵심 내용을 압축적으로 습득할 수 있으며, 타 공학 학과에서 수년에 걸쳐 나눠 배우는 내용을 로봇이라는 실체 있는 시스템을 중심으로 한 학기 안에 효율적으로 연결해 가르친다는 점이 특징이다.
로봇학부 교육의 또 다른 축은 ‘만드는 경험’이다. 학생들은 재학 기간 동안 로봇 팔 제작, AI 모델 구현 등 실제 결과물을 완성하는 실험 과목을 단계적으로 이수한다. 추상적인 이론을 손으로 구현하는 반복적인 경험이 곧 실무역량으로 이어진다는 교육 철학이 바탕에 있다. 광운대 교육 프로그램은 한국공학교육인증원(ABEEK)의 로봇공학 프로그램 인증을 받아 체계적인 공학 교육의 질도 공식적으로 검증받았다.
이외에도 광운대는 전자·정보통신·소프트웨어 분야의 전통적 강점 위에 AI와 사이버보안 특화 트랙을 쌓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정 ‘정보보호 특성화대학’이라는 타이틀이 핵심 경쟁력이다.
■ 글로벌 기술 인력난… ‘K-TVET’ 모델 경쟁력 부각 = 그렇다면 ‘K-EDU’가 글로벌화 되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이 개선돼야 할까. 전문가들은 ‘한국 모델을 그대로 수출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전제로 했다. 파트너 국가의 산업 수준, 제도적 인프라, 노동시장 구조를 면밀히 분석한 뒤 맞춤형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 시장은 개도국과 접근 방법이 다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교육 시스템 전체가 아니라 ‘우리 시스템에 접목할 수 있는 구체적 프로그램’이다. IPP 장기실습 모델, 마이크로디그리 인증 체계 등 모듈 단위로 협력 방안을 제시하고, 공동 연구 및 복수학위 프로그램을 선행하는 전략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직업교육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높아지는 배경에는 전 세계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기술 인력 부족(skills shortage)’ 문제도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McKinsey)는 최근 보고서에서 디지털 전환과 첨단 제조업 확대로 인해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명 규모의 기술 인력이 부족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반도체, 배터리, 로봇, AI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는 이론 중심의 학위 교육만으로는 현장 수요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미국 역시 제조업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을 추진하며 숙련 기술 인력 확보를 중요한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을 중심으로 대규모 생산시설 투자가 이어지고 있지만, 현장에서 즉시 투입 가능한 기술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산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유럽도 상황은 비슷하다. 독일, 프랑스 등 제조 강국들은 기존 도제 교육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지만, AI와 자동화 기술 확산으로 새로운 형태의 직무 역량을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의 직업교육 모델은 ‘빠른 기술 적응력’이라는 장점을 갖는다. 산업 변화에 맞춰 교육과정을 비교적 유연하게 개편하고, 기업 프로젝트를 교육과정에 직접 연계하는 방식은 글로벌 직업교육 시장에서도 경쟁력 있는 모델로 평가된다.
한국공학대 관계자는 “미국·유럽 등에서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 제조기업이 집적되면서 숙련 인재를 넘어선 ‘전문가급 인력’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커지고 있다”며 “제조업 부흥은 축적된 현장 노하우를 가진 인력이 필요하다. 한국의 직업교육이 해당 국가의 제조업을 부흥시키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한국대학신문